악마 스쿠르테이프가 어린 조카 악마인 웜우드에게 보내는 31통의 편지.
연약한 '환자'(인간)들을 '원수'(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노련한 악마의 조언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 대단한 C.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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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단순히 불행이 닥쳤다고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 불행이 권리의 침해로 느껴질 때 분노한다. 이렇게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의식은 자기의 정당한 요구가 거절당했다는 느낌에서 나오는 거야. 따라서 네 환자가 삶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도록 유도하면 할수록 그런 의식을 갖게 되는 횟수가 늘어날 테고, 결국에는 성질도 나빠질 게다.
이제 너도 알아챘겠지만,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시간을 느닷없이 빼앗겨 버리는 것만큼 화내기 쉬운 상황은 없다. 뜻하지 않은 손님이 왔다거나(한적한 저녁시간을 보내길 고대했는데), 친구의 아내가 마구 수다를 떤다거나(친구와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하는 작은 일들이 환자의 절제심을 무너뜨리지. 이 일 자체만 놓고 본다면야 네 환자도 이런 사소한 결례를 참지 못할 만큼 무자비하거나 나태한 인간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자기 시간은 그야말로 자기 것인데 도둑 맞아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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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큰 문제는 '비이기주의'이다. 이 점에서도 역시 우리 언어학적 무기의 탁월한 업적 덕분에, 원수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적극적 개념이 '비이기주의'라는 소극적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애시당초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자기 이익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이익을 포기하도록 가르칠 수 있게 된 건 다 이 덕분이야. 우리로선 큰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셈이지.
... 두 사람이 함께 뭔가를 하려고 의견을 나눌 때마다, A 는 A대로 B는 대로 각자 자기 바람은 제쳐 둔 채 상댕방의 뜻을 지레짐작해서 편들어 주는 게 의무처럼 되어 버리거든.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이 뭘 진짜 바라는지 알아 낼 수 없을 때가 자주 있다는 거야. 운이 좋으면 둘 다 전혀 바라지 않던 일을 해 놓고도 자기 의에 취해서 만족하며, 자신의 비이기주의에 합당한 특별 대우를 은근히 기대할 뿐 아니라 상대방이 자기의 희생을 너무 간단히 받아들인다는 불만까지 슬쩍 품게 할 수 있지.
[출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작성자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