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에 나오는 2011년에 실린 오피니언의 내용 입니다 “김정일이 죽었을 때에 북한 전역은 거대한 장례식장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주민과 군인이 눈발이 날리는 영하의 거리에서 김정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중략...김정일의 시신은 금수산기념궁전 아버지 옆에 놓였다. 금수산궁전은 수많은 북한 주민의 굶주림 위에 세워졌다. 김일성이 1977년 10억 달러를 들여 지은 관저가 그의 사후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무덤으로 변했다. 관저를 무덤으로 바꾸는 공사에 2억 달러가 투입됐다.”
그렇게 화려하게 갔지만, 그 죽은 무덤은 그가 한낱 인간에 불과했으며, 그저 죄를 지은 인간에 불과한 자로 남게 된 것을 증명해줍니다. 무덤이 크면 클수록,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크게 증명해주는 셈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무덤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우리 주님 돌아가실 때에, 사람들은 그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도 못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에 의해서 버려지는 것처럼 되었고, 후에 주님을 따르던 자들에 의해 조용히 수습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무덤은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여러 추정만 있을 뿐입니다.
초라했던, 그 주님의 죽음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죽음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일은 없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십자가에서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무덤, 좋은 무덤 보다는, 초라한 무덤이지만 생명이 있었던 그 무덤, 하나님의 영광이 있었던 그 무덤이 좋습니다. 화려한 무덤 쫓아가도 거기에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지만, 초라한 무덤에서 가서 거기에 계셨던 분을 따른다면, 그분의 부활도 우리의 부활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무덤은 하나님의 정의를 드러내지만, 초라한 무덤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디서 만나십니까?